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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절된 민족의 꿈, 무너진 민족성전 건립 운동

               

          1. 상해 임시정부는 왕검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한 해로부터 연대를 계산하는 단기를 사용하고, 왕검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한 날인 10월 3일을 개천절로 제정하여 민족 축제일로 삼았습니다. 1945년 8.15광복 후에도 왕검단군을 국조로 한 개천절과 단기를 그대로 사용하였습니다.

           

          2. 그러나 5.16 군사정변을 일으킨 군사정부는 1961년 12월 2일자로 왕검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한 해를 기원으로는 단기 사용을 폐지하고, 예수가 출생한 해를 기원으로 하는 서기를 사용하게 했습니다.

           

          3. 한 국가가 자국의 기원(혹은 연호)을 사용하는 것은 그 국가의 자주독립성을 표방하는 것입니다. 자기 나라의 연호(혹은 기원)를 사용하지 않고, 다른 나라의 연호를 사용하는 것은 전쟁의 패배로 인한 복속이나 스스로 다른 나라에 복속된 경우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자기 나라의 기원인 단기를 스스로 버리고 서기를 사용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역사를 모르는 자들, 역사의 중요성을 모르는 자들, 민족적 주체성이 없는 자들, 기독교ㆍ서양문화에 대한 사대주의자들이 정책을 좌우했기 때문입니다.

           

          4. 그러나 박정희 정부는 곧 민족주체의식의 매우 중요함을 깨달았습니다. 때문에 1966년, 박정희 정부는 남산에 거대한 단군상을 세워 민족주체의식을 심어주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강력한 반대로 무산되었습니다.

           

          5. 1985년 2월말, 전두환 정부의 서울시장 염보현장을 위원장으로 한 “단군성전 건립 운영위원회”와 김진원 부시장을 위원장으로 한 “단군성전 건립 추진위원회”를 조직하였습니다.

           

          6.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민족혼을 일깨워주기 위한 역점사업으로, 사직단이 있는 사직공원의 성역화와 사직공원 안의 단군성전을 크게 확충하기로 하고, 그 비용을 국고 지원과 개인 헌금으로 충당하기로 했습니다. 이를 기점으로 전국적으로 단군신전 건립운동을 벌이기로 하고, 지리산에는 단군 국조전을 세울 계획도 세웠습니다.

           

           

           사직공원 안에 있는 16평 규모의 단군성전

           

          7. 서울시는 30~40억원(현재의 가치로 약 300~400억원 이상)을 들여 사직단에 있는 사직공원을 성역화하고 공원 안에 있는 16평 규모의 단군사당을 크게 확장하여 성전으로 만들기로 했습니다. 1985년 5월에 설계에 착수하여 1986년 초에 공사를 시작하고, 1987년에 완공한다는 일정을 세운 것입니다.

           

          8. 그러자 당시 한국기독교지도자협의회 회장이 “국민의 세금으로 특정 종교의 사당을 세울 수 없으며, 중ㆍ고등학생을 참배케 하면 우상숭배를 조장하는 것이 되므로 반대한다.”며 서울 시장을 항의 방문하였습니다.

           

          9. 기독교 단체들이 단군전 건립 중지를 위한 대통령의 결단, 건립계획의 백지화, 민간차원의 건립에 대한 지원 중지를 요구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1985년 11월 14일에 발표하였습니다.

           

          10. 뿐만 아니라 전국교회가 교회당 전면에 “우리는 단군전 건립을 결사반대 한다.”는 프랭카드를 걸고 서명운동을 벌였습니다. 전국 기독교인 중에서 중학생 이상을 대상으로 단군전 건립 반대 서명운동을 전개한 결과 2,269교회에서 289,781명이 서명에 참여하였습니다.

           

          11. 전국 도시를 중심으로 24개 지역별 노회가 연합하여 “지역 단군전 건립 반대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지역에서 반대운동을 전개하고 “연합반대기도회”를 16회 열었습니다.

           

          12. 어떠한 기독교 단체는 순교할 각오로 반대 운동을 벌였습니다. 시위와 함께 단식투쟁을 벌이는 교회도 점점 늘어갔습니다. 당시 국회부의장이 대통령을 독대하여 반대의견을 전달하는 등 정치인들을 이용한 회유와 압력도 병행하였습니다.

           

          13. 결국 정부는 기독교의 반대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부는 1985년 12월 5일 이원홍 문공장관이 교계신문 사장들과의 간담회에서 정부차원에서의 건립계획이 없음을 밝혔고, 1985년 12월 12일 민주정의당 정책위원장이 초교파적 대책 기구인 “단군성전 건립에 대한 기독교대책협의회”에 참석하여 민정당으로서는 정부가 이를 건립치 않도록 할 것이라고 발표 하면서 국무총리와의 면담을 주선하였습니다.

           

          14. 1985년 12월 19일 노신영 국무총리는 기독교 단체 총회장 등 기독교 지도자들과 만나 “서울시와 정부는 단군전 건립에 무관할 것임과 지방공무원이 이에 관여치 않도록 할 것임”을 약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독교 교단에서, 국무총리실에 보낸 공문에 대한 1986년 3월 18일자 회신에서 서울시도 “단군전 건립 문제는 서울시에서 추진 계획이 없음”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5. 고조선을 건국하신 단군왕검 할아버지를 모신 민족성전 건립운동은 기독교의 적극적인 반대로 좌절을 맛보았습니다. 그 결과 유대인의 수호신인 야훼(여호와)와 유대인인 예수를 섬기는 대규모 교회가 전국 각지에 60,000여개가 번창하는 반면, 고조선의 건국 시조이신 단군왕검 할아버지를 모신 성전은 서울시 토지인 사직공원 안에 16평 규모로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교회 화장실 크기보다 적은 16평의 단군성전을 보면서 단군성전 반대운동을 벌였던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16. 기독교는 민족성전 건립운동만 좌절시킨 것이 아니라 국사 교과서 개정운동도 적극적으로 반대하였습니다. 단군왕검을 건국시조로 한 국사교과서 개정을 반대하는 기독교계의 반대 운동 또한 격렬하게 전개되었습니다. “단군신화를 사실화한다면 우리 민족이 곰의 자손이 된다. 어찌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이 곰의 자손이 된단 말인가.”라는 무식한 명분을 앞세운 것입니다. 기독교가 범교단적으로 “단군 실존화 국정교과서 편입에 대한 기독교 대책협의회”라는 기구를 발족시켜 대대적인 반대운동을 전개한 것입니다.

           

          17. 이들은 반대운동의 일환으로 전국적인 서명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진정서와 함께 엄청난 수량의 서명명단을 문교부로 보내어 압박하고, 당시 국회부의장을  내세워 “단군 실존화 국정교과서 편입에 대한 기독교 대책협의회” 위원들을 장관과 면담하게 하였고, 담당 관리들에게도 유무형의 압박을 가하였습니다.

           

          18. 일제 식민사학자들은, “환인(桓因)은 불교의 천신이다. 그러므로 『삼국유사』「고조선」편에 환인(桓因)의 아들 환웅천왕, 환웅천왕의 아들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는 기록은 불교가 도입된 이후에 조작된 신화이다.”라는 논거로 역사 교과서에서 단군왕검의 고조선 건국역사와 고조선 역사를 삭제해 버렸습니다.

           

          19. 8.15 광복 후 한국의 고대사분야는 일제의 식민사관을 추종하는 이병도와 그 제자들, 그 제자들의 제자들이 장악하여 왔기 때문에 왕검단군의 고조선 역사는 사실로서 국사교과서에 수록되지 못하고, 교육되지도 못해온 것입니다.

           

          20. 기독교에서 단군을 신화로 매도하고, 단군의 건국 역사를 국사교과서에 수록하여 가르치지 못하도록 대대적인 반대운동을 편 근거가, 일제가 한국인들이 역사문화적인 자긍심을 가질 수 없도록 한국사를 말살ㆍ왜곡시킨 논거를 그대로 사용하였습니다.

           

          21. 이러한 반민족적 행태에 충격 받은 김종서 박사님이 한국사를 되찾는 일에 전 재산과 일생을 걸게 되셨고, 20여년의 연구 결과로 왕검단군이 건국하신 고조선의 역사적 실존을 입증하셨고, 고조선 이전 한국최초의 국가로 환웅천왕께서 건국하신 신시의 역사도 밝혀내셨으며, 신시와 고조선 문화가 세계4대문명보다 앞선 세계최초의 문명인 요하문명이라는 것, 위만조선과 한사군은 한반도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북성 동부와 요하 서부지역인 요녕성 서부지역에 있었다는 것 등의 많은 역사적 사실들을 밝혀내셨습니다.

           

          22. 김종서 박사에 의해, 우리 글자가 없던 시대에 천국의 황제 즉, 하늘님금(하느님ㆍ하나님)을 천제(天帝)ㆍ황천(皇天)ㆍ상제(上帝)ㆍ천신(天神)ㆍ천(天) 등의 한자로 기록하였고, 불교도입 이후에는 불교의 천신인 환인(桓因)으로 기록한 것이라는 것. 한국인들은 수 천 년 동안 하느님(하나님)을 첫 조상님으로 모든 신들 중에서 가장 높은 신으로 섬기고 있었다는 것. 수천 년 동안 한국인들이 섬겨오던 하느님(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이용하여 포교하기 위하여, 기독교에서 하느님(하나님)을 기독교 신이라고 속여서 포교하여 왔다는 것 등의 수많은 역사의 진실이 밝혀내셨습니다.

           

          23. 만약 기독교에 의한 “민족성전 건립반대운동”과 단군왕검의 고조선 역사를 국사 교과서에 싣는 “국사 교과서 개정반대운동”이 없었다면, 김종서 박사님이 역사 연구를 하셨을 리도 없고, 김종서 박사님에 의해 한국의 고대 국가 건국 시조들의 아버지, 할아버지이시자 한국인의 첫 조상님이신 하느님(하나님)을 기독교의 신이라고 속여 온 역사적 사건이 밝혀졌을 리도 없었을 것입니다.

           

          24. 기독교인들이 ‘왜 자신들이 내는 세금으로 우상을 숭배하는 건물을 짓고 운영하느냐?’는 반대로 국가에서 건국시조님들을 모신 민족성전을 건립하고 운영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시간 이 더 지나면 민족성전을 세우자고 나설 사람도 민족성전이 한국인의 정체성 확립에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사람도 없어질 것입니다.

           

          25. 조선이 일본에 국권을 강탈당하기 전까지 국가에서 하느님(하나님), 환웅천왕, 왕검단군의 삼성과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 고려의 건국시조님들의 신전을 세우고 국가 차원에서 제사를 모셔왔습니다. 조선에서 멸망시킨 고려 태조의 신전(숭의전)까지 짓고 제사를 모셔온 이유는 조 이 고조선,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 고려의 적통을 이은 국가라는 것을 내외에 표방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26. 그러나 한국을 강제 점령한 일본은 한국인들이 건국시조들의 성전을 운영하고 제사를 보시는 것을 금지시켰습니다. 한국인들이 한국인의 첫 조상이신 하느님과 신시, 고조선, 북부여, 부여, 동부여,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의 건국시조 제사를 지내면서 역사적 자긍심, 혈통적 자긍심을 갖고 단합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27. 일본에 빼앗겼던 나라를 되찾았지만, 이제는 기독교의 반대로 국가 차원에서 신시, 고조선, 북부여, 부여, 동부여,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 발해, 고려, 조선의 건국시조 할아버지들의 제사를 모시고, 대한민국이 이들 국가의 정통성을 이은 국가임을 온 세계에 표방하는 것이 불가능 합니다.

           

          28. 신시, 고조선, 북부여, 부여, 동부여의 영토는 중국ㆍ러시아 땅이 되었고, 고구려ㆍ발해 영토 대부분은 중국ㆍ러시아 땅이 되었습니다. 중국은 고조선ㆍ부여ㆍ고구려ㆍ발해 역사를 중국사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건국시조의 제사도 지내지 않고, 건국시조들의 건국 역사조차 가르치지 않는다면 신시, 고조선, 북부여, 부여, 동부여, 고구려, 발해의 역사도 잃게 될 것입니다.

           

          29. 때문에 김종서 박사님이 역사 연구에 그치지 않고, “아는 자가 행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보다 나을 것이 없다.” 라고 하면서 기독교의 반대로 이루지 못한 건국시조님들을 모신 민족성전을 전국 방방곡곡에 세우는 운동, 우리의 민족성전인에서 자랑스러운 한국인의 뿌리ㆍ자랑스러운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가르칠 강사ㆍ교수ㆍ민족지도자를 양성하는 ‘역사문화종교교육 바로잡기 운동’에 자신의 모든 재산과 나머지 일생을 걸고 계십니다.

           

          ①. 그 민족성전에 한국인의 첫 조상님이신 하느님(하나님) 할아버지, 하느님(하나님)의 아들 손자들로 신시를 건국하신 환웅천왕 할아버지ㆍ고조선을 건국하신 왕검단군 할아버지ㆍ북부여를 건국하신 해모수천왕 할아버지ㆍ부여를 건국하신 동명제 할아버지ㆍ고구려를 건국하신 추모성왕 주몽 할아버지ㆍ신라를 건국하신 박혁거세왕 할아버지ㆍ가야를 건국하신 김수로왕 할아버지ㆍ백제를 건국하신 온조왕 할아버지, 그리고 천국에서 강림하신 신으로 이씨ㆍ최씨ㆍ정씨ㆍ손씨ㆍ배씨ㆍ설씨의 시조가 되시어 신라를 건국하신 이알평공ㆍ최지백호공ㆍ정소벌도리공ㆍ손구례마공ㆍ배지타공ㆍ설호진공 할아버지, 신라 김씨왕조의 시조가 되신 김알지공 할아버지, 발해를 건국하신 고제(高帝) 대조영 할아버지, 고려를 건국하신 태조 왕건 할아버지, 조선을 건국하신 태조 이성계 할아버지, 그리고 각 성씨들의 시조 할아버지들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모시는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건국시조를 모신 민족성전에서 건국시조 할아버지들의 신위를 모시고 향을 올리고 제사를 모시는 것은 대한민국이 신시, 고조선, 북부여, 부여, 동부여,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 발해, 고려, 조선의 정통성을 이은 국가이고, 한국인이 이분들의 혈통을 이은 종족(천손족)임을 온 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한 것입니다.

           

          특히 신시ㆍ고조선ㆍ고죽ㆍ숙신(숙신 → 읍루 → 물길 → 말갈 → 여진 → 만주족)ㆍ북부여ㆍ위만조선ㆍ북부여ㆍ부여ㆍ동부여ㆍ고구려ㆍ발해 등의 건국시조의 제사를 모심으로서 한국이 이들 국가의 정통성을 이은 국가이고, 한국인이 이분들의 후손임을 세계에 널리 표방함으로서 고조 ㆍ부여ㆍ고구려ㆍ발해ㆍ금ㆍ여진족의 역사를 중국사로 왜곡하는 중국의 역사침탈에 적극 대응하기 위한 목적도 있습니다.

           

          기독교의 반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있는 올바른 역사문화를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에게 가르치고, 유교ㆍ불교ㆍ도교ㆍ기독교ㆍ힌두교ㆍ이슬람문화보다 우수한 한국 고유의 문화를 가르쳐서 천손족으로서의 진정한 정체성을 갖게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30. 전국 방방곡곡, 세계도처에 한국인의 민족성전을 세우고 천손족의 역사, 천손족의 문화를 가르치는 첫 걸음으로 서울 강서구 염창동에 약 800평의 상가를 사서 첫 번째 민족성전을 세웠습니다.

           


          민족성전 천손문화원의 건국시조전 내부

           

          31. 이 민족성전이 10개가 되고, 100개가 되고, 1000개가 되고, 수 만개가 될 수 있도록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분들, 우리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역사 자랑스러운 정신문화를 물려주기 원하는 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기다립니다. 좌절된 국사ㆍ역사ㆍ한국사ㆍ세계사ㆍ역사부도ㆍ도덕ㆍ윤리ㆍ교련 등의 교과서 바로잡기 운동, 역사문화종교 교육 바로잡기 운동, 민족성전 건립운동이 다시 실패하는 일이 없도록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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